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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80765 작성자 구글크롬 작성일 2026/08/02 08:24:09 조회 141
제목 우린 무능을 자유로 착각하진 않는가.

1. 담배 연기 속의 착각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재떨이가 있고, 나는 담배를 물고 있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근무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팔자 좋다", "자유롭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담배 한 까치를 피우는 행위가 정말 나의 자유인가? 아니면 니코틴이라는 화학 물질이 시키는 대로 반응하는 노예의 굴종인가? 겉보기에 나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멀리 걷거나 이동하는 것부터 제약이 있고 습관적인 흡연과 통제되지 않는 성욕 그리고 머릿속에 주입된 수많은 관념으로부터 조차 나는 자유롭지 않다.

그 관념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자본과 미디어, 제도와 규범 등, 권력이 심었다. 내가 원한다고 믿는 것의 태반은, 저들이 내 안에 심어 둔 것이다.


2. 자유를 검증하는 세 가지 필터

2-1. 외부 필터 (구조적 자유):
지금 내가 담배를 피우는 걸 막는 법이나 권력, 폭력은 없다. 이 조건에서 나는 자유롭다. 허나 이건 자유의 시작 필요조건일 뿐이다. 똥통에 빠진 사람을 아무도 밀어넣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자유롭다 할 수 있는가. 권력은 금지하지 않는다. '막는 게 없다'를 '너는 자유롭다'로 바꿔 부를 뿐이다. 그 한마디로 누가 파 놓은 똥통은 가려지고, 빠져서 못나온 자의 탓이 된다. 맞서야 할 것이 '자유'라는 이름 뒤로 숨은 자리, 거기서 진짜 부자유가 시작된다.

2-2. 내부 필터 (욕망의 자유):
내가 지금 담배를 원하는 건가 아니면 내 뇌의 니코틴 수용체가 원하는 건가? 만약 내 의지가 아니라 중독된 뇌가 시키는 것이라면 나는 흡연을 '선택'하기 전에 충동에 '굴복'한 것이다. 이건 자유가 아니다.

2-3. 현실 필터 (실현의 자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담배를 끊을 수 있는가? 멀리 여행을 가고 싶을 때, 내 다리와 허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원하는 것을 실행할 체력과 자원, 혹은 원치 않는 것을 멈출 절제력이 없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무능'이다.


3. 방종: 욕망의 기원을 모르는 질주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방종'을 혼동한다. "내 마음대로 할 거야"라며 밤새 술을 마시고, 게으름을 피우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자유라고 착각한다. 욕망의 출처도 모른 채 끌려 다니는 건 자유가 아니라 '충동의 노예 상태'다. 내 다리가 아파서 걷지 못하는 게 '부자유'인 것처럼.내 의지로 담배를 끊지 못하거나 성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 또한 정신적인 '부자유'다. 자신을 망가뜨리는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자기통제력이 붕괴된 방종일 뿐이다. 허나 이 논리는 거꾸로 쓰인다. 가난한 사람이 무너지면 '게을러서'라 하고, 중독에서 못 빠져나오면 '의지가 약해서'라 한다. 한편 누구는 절제하기 쉬운 자리에 태어나고 누구는 어려운 자리에 태어난다. 통제력을 키울 출발선부터 다르다. 개인의 방종을 탓하기 전에, 그 출발선을 무엇이 어떻게 그어 놓았는지를 물어야 한다.


4. 자유는 '능력'이다
결국 자유는 감정적인 해방감이 아니라, 철저한 '능력(Capacity)'의 문제다. 멀리 가고 싶다면 걸을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이 있어야 하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면 내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 꿰뚫어 볼 성찰 능력이 있어야 하며 삶을 장악하고 싶다면 쾌락을 끊어낼 줄 아는 절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조건을 갖추지 못한 자에게 자유는 공허한 소리다. 감당할 능력이 없는 자유는 방종이나 타락으로 귀결된다.


5. 결론: 감당 가능한 자율성
나는 다시 담배를 바라본다. 이 연기를 내 의지로 멈출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이 담배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내 다리가 걷고 싶은 곳까지 나를 데려다 줄 수 있을 때나는 이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그것은 무엇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이자, 무엇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다. 그러므로 자유란, '감당 가능한 자율성'이다. 그 자율성은 끝없는 성찰과 훈련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ㅡ 황현수, 《위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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