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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80776 작성자 크롬구글 작성일 2026/09/02 21:49:48 조회 131
제목 결혼, 가성비 박살 난 계약


결혼은 사랑이 아니다. 고된 계약이다. 그래서 그 계약은 아무나 해선 안 된다.

1. 가성비 붕괴의 징후

현재(2020년대 중반)는 결혼 제도의 '가성비'가 박살 난 시기다.
과거의 결혼은 생존, 노동력, 노후, 성, 사회적 인정을 해결하는 종합 계약 세트였다.
지금은 효용의 대부분이 결혼 밖에서도 해결되는데, 부양 의무와 양가 관계, 배우자의 빚, 이혼이 재판까지 가는 경우 변호사비 등 책임은 여전하다.
효용은 줄고 책임은 그대로인 이 구조는 다양한 붕괴 징후를 낳았다.

- 혼인의 급감:
인구 천 명당 혼인 건수는 1996년 9.4건에서 2021년 3.8건으로 약 25년 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통계청 혼인·이혼 통계, 2022). 가성비가 나쁜 계약은 맺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 이혼의 캐주얼화:
"
참고 산다"는 옛말. 30년 이상 산 부부의 이혼이 전체 1위가 됐다(통계청, 2025). 자녀가 독립하면 결혼을 유지할 이유도 사라진다.

- 비혼 동거의 양지화:
결혼의 법적 구속(책임)은 싫고, 섹스와 정서는 원하기에 '동거'를 택한다. 맘에 안 들면 언제든 짐 싸서 나갈 수 있는 '가벼운 상태'를 당당히 추구하는 시대다.

2. 사랑이라는 위장

결혼은 거래다. 다만 돈과 효용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기 쉽다.

사람들은 결혼이 지닌 거래적 성격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랑 없는 결혼은 순수하지 못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것을 거래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관계는 덜 아름다워지고, 상대 역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더구나 결혼한 뒤에도 그것이 거래라는 사실을 계속 의식하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거래임을 숨기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가 성매매다. 성매매는 성만을 단기간 거래하고, 결혼은 생활 전반을 장기간 거래한다. 형태와 기간은 다르지만,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는 양쪽 모두 같은 구조다.

성매매는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선 상대가 특정한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고, 돈을 내는 누구로든 대체된다. 무엇보다 거래가 그대로 드러난다. 돈이 그 자리에서 오가니 거래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이라 하면 아무도 안 믿고 위장하기도 어렵다. 거래는 거래대로 성립하는 것인데 사랑이 아니면 어떤가? 성매매가 나쁜 것은 배신이나 착취로 피해자가 생길 때다. 예컨대 서로 싱글인 성인이 자유로운 의사로 거래했다면, 이 성매매에서는 피해자도 벌할 대상도 이유도 없다.

위선은 위장이 가능한 쪽에서만 생기기 때문에 정직성만 따지면 성매매가 결혼보다 정직하다. 대놓고 하는 거래는 처벌받고, 사랑으로 위장한 거래는 축복받는다.

결혼에 사랑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같은 세월을 견딘 부부의 동질감에서 이해와 배려가 나오면 사랑이다. 문제는 순서다. 사랑이 있어서 그 이름을 쓰는 게 아니라, 거래를 가리려고 사랑이라는 용어부터 마구 갖다 쓴다는 것이다.

한편 인간 자체를 보자.
대부분의 결혼은 인간을 도구화한다. 나의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도구, 내 자녀를 돌봐 주는 도구, 내 외로움을 해소시켜주는 도구, 내 인생에 안정을 주는 도구 심지어 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도구까지. 그리고 이 거래를 사랑이라고 부른다. 진짜 동기를 명분으로 위장하는 것, 이 책이 말해 온 위선의 정의 그대로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가 개성을 가진 실존적 존재다. 누군가의 도구로만 살아가도록 강요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부자유와 혐오를 감지한다.

서로를 사람이 아니라 기능으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갈등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두 사람이 마치 화약을 품고 떠나는 여행처럼 된다.

이런 거래를 사랑으로 믿게 하는 것은 초반의 강렬한 욕망이다. 그러나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콩깍지는 몇 년 내에 사라진다고 알려져 있다. 페닐에틸아민(PEA), 옥시토신, 도파민 같은 화학물질의 작용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사랑"으로 착각한다. 영원을 약속하는 그 감정은 유효기간 있는 화학작용이다.

그 사랑(?)이 끝나면 남는 건 정(情), 의리, 익숙함, 자녀 문제. 그러다 막장 진흙탕 싸움, 법정 다툼, 철천지 웬수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커플들은 '거래'와 '순수한 관계' 사이 어딘가를 오락가락하다가 상대가 일정한 재화로써의 가치를 상실하면 파기를 주장하거나 헤어지지도 못하고 그저 유명무실한 관계로 굳어버린다.


3.
좋은 결혼의 요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혼을 하겠다는 사람은 남녀 모두 '결혼할 요건'을 먼저 갖춰야 한다.

그 요건이란 역설적으로 "혼자 잘 살 수 있는 능력"이다. 의존하려는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가 도구가 되기 더 쉽고, 독립할 수 있는 두 사람이라야 상대를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대할 여유가 생긴다.

각자가 자신의 건강과 노후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어야 하며 인생과 윤리, 자유와 사랑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각자가 자기 앞가림을 충분히 하면서도 가족을 위한 시간적, 정서적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원하는 가족 수만큼 부양 가능한 경제력도 있어야 한다.

즉, 매슬로우 욕구 단계 이론으로 보면 4단계(자존 욕구)까지는 도달한 사람이어야 하고 자아실현을 향해 가는 중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혼으로 인해 가족의 기생충이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

쉽지 않다. 함부로 덤벼들 일이 아니다.
동거 정도라면 해볼 만할지도 모른다.

4. 결혼과 출산을 분리하자

그런데도 결혼이 완전히 죽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제도적 보호가 혼인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거와 금융상의 혜택도 더해진다.


국내 혼외자는 전체 출생의 5.8%다(통계청, 2024). OECD 평균은 41%다. 20·30대의 비혼 동거 찬성이 80%를 넘는데 비혼 출산은 5.8%에 멈춰 있다. 비혼 출산을 제도가 막고 있다는 뜻이다. 결혼 안 한 여성은 시험관 시술부터 막히고, 출생신고 서식은 아이를 혼인 중과 혼인 외로 구분하며, 동거 상대에게는 수술 동의권도 상속권도 없고, 신혼부부가 아니면 청약과 대출에서 밀린다.

주거 마련과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만은 여전히 혼인 안에서 더 많은 제도적 보호를 받는다
. 이것이 결혼의 마지막 남은 효용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것은 혼인이라는 형식인가, 출산율인가?
사실 보호해야 할 것은 혼인이라는 형식보다는 출산과 양육이라는 실질이다.

그래서 결혼을 포기한 세대는 출산도 같이 포기하게 된다. 출산율 0.72는 이 제도의 결과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1999년 결혼 밖 동반자 관계를 법으로 등록하는 제도를 만들었고, 지금 아이 열에 여섯이 결혼과 관계 없이 태어나며, 출산율은 유럽 최상위다. 결혼과 출산을 묶어 둔 나라의 출산율은 낮고, 풀어준 나라는 높다.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결혼과 출산의 분리다. 양육을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가 보호하는 것이다. 출생신고 서식이나 시술 지침은 몇 줄만 고치면 되는데도 안 고치고 있고, 동반자 등록제는 법안이 나올 때마다 국회에서 잠들었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물론 간단하지 않다.

프랑스도 등록제를 만들고 정착까지 사반세기가 걸렸다
. 그러나 시작조차 안 한 나라와 시작해서 사반세기를 쓴 나라의 차이가 지금의 출산율 차이다.

5. 인간은 왜 결혼을 반복하는가?

그런데 인류는 왜 이렇게 무모한 결혼을 반복해왔고,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걸까? 아마도 시작은 본능과 착각, 외로움과 의존하려는 심리, 이 제도에 대한 막연한 낙관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시작된 뒤에는 정(情)과 자녀, 대책 없음, 미련과 익숙함이 관계를 붙잡는다. 결혼은 어쩌면 뉴턴의 제1법칙 때문에 유지되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ㅡ 황현수, 《위선》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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